삼세가 둘 아닌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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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오늘 법회 중 큰스님께서 보턴 하나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연구를 말씀하셨는데, 보턴에 손가락을 댓다 땟다
하는 것이 아닌 믿음을 갖고 꾸욱 누르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법문 발췌) 일체를 주인공에 일임해 놓는다면 내가 한생각을 낼 때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생명들의 능력은
모두 들어와 한마음에 응하므로 무량한 능력이 발휘되게 된다.
-경험담 : 천도재 전날 노자돈 봉투를 정성스럽게 준비했는데 천도재 당일날 9시반 쯤 선원에 도착해서야 잊어버리고 안 가져온 걸 알았어요.
관을 해 보니 “이것도 주인공 자리에서 나를 공부시키려고 나온 것이다. 초조해서 습대로 하지 않고
그걸 놓아버릴 절호의 기회를 준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다 놓고 택시를 타고 의왕 집으로 다시 갔어요.
그랬더니 의왕과 선원을 신호 한번 안 걸리고 30분 내에 갔다 올 수 있어 천도재에 늦지 않았어요.
초조, 불안감도 주인공 자리에서 나온 것이니 그 자리에 도로 놓아버리니 초조, 불안감이 붙을 자리가 없어진 겁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도둑에게 곳간 열쇠를 아예 맡겨버렸다는 일화와 같은 맥락입니다.
-(법문 발췌) 결국 이생이든 내생이든 자기의 삶의 차원은 자기가 어떻게 마음 먹고 행하는가에 달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의 팔자운명도 유전성도 마음먹기에 따라 윤회할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법문 발췌) 이 세상은 영원한 생명과 마음 내는 것 그리고 육신이 움죽거리는 것 이 셋이 삼각원형을 이루고
돌아가고 있다. 우주와 별성들도 그리하고 있다.
-지혜로운 마음은 공 자리에서 나오는 마음입니다.
-(법문 발췌) 내가 아무리 훌륭한 마음을 낸다고 해도 개체인 내가 내고 있으면
우주법계의 모든 생명들의 에너지는 한마음의 에너지가 되어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인공을 믿고 일체를 맡겨놓고 하되 하지 않는 무심의 마음으로 공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습에 의해서 때로는 인연에 의해서 인과응보가 되어 나오는 그 훈습들, 나오는 대로 주인공 한마음 자리에
놓아버리면 인과응보도 유전성도 다 녹아 버린다.
-(법문 발췌) 상대를 둘로 보면 업보가 되고 둘로 보지 않으면 업보가 되지 않는다.
-생각이전과 생각, 행이 세가지 중 윤회와 인연은 어디에 속할까요?
-전번 심포지엄 중 김원명 교수 주제인 우리 삶은 결정되어 있는 건가 아닌가에 답이 있어요.
과거 것이 현재 삶에 녹아 나와 섞여지는 것이다. 과거 것을 공 자리에 놓으면 공덕이 되는 것이다.
업식은 주인공을 덮은 극복해야 할 별개의 것이 아니고 그것도 주인공과 둘이 아닌 것이다.
아뢰야식에 저장된 것이 불시에 튀어나오는 것이 업식인데 아뢰야식에 들어가지 않고 바로 10식에 들어가서 녹여 내려야 한다.
-주인공 할 때 공의 개념은 무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므로 비어있다는 공의 개념이다.
비어있지만 꽉 차서 그래서 놓을 수 있는 자리이다.
-인식론에서 공의 개념은 “내가 없는데 뭐가 있을 수 있나?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있는 것 아닌가? 수학의 0과
무한대가 통하듯 없다는 것은 무한히 많다는 것과 같다. 나라는 고정된 상이 없다는 거, 즉 무자성이라는 것이지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이다.
통상 말하는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잘못된 것이다. 죽을 때 물질만 안 가져 갈 뿐 업식과 마음은 온전히 다 가져가는 것 아닌가?
-이는 최근 조계종 논쟁 주제였던 '이해인가? 깨달음인가?'와 해묵은 돈오돈수냐 돈오 점수냐의 논쟁과도 같은 맥락인데
큰스님께서는 '찰나에 돈오하고 그 갓난아이 같은 돈오를 정성스레 키우는 것이 점수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불성은 조계종에서는 공이고 우리 선원은 주인공이다. 큰스님께서는 주인공을 심봉, 심주라고도 하셨다.
팔뚝을 세워 내 보이시면서 말씀하시는 걸 똑똑히기억한다. 나라는 몸과 업식이 심봉 겉을 원으로 돌아가므로
그것을 주인공 자리에 끊임없이 놓아가는 과정이 공부하는 현재 삶이다.
-우리 선원의 공의 개념은 뜻으로 푼 반야심경에 잘 나와 있다.
-큰스님의 공 개념에는 빌 공, 더불어 공, 공놀이할 때 둥근 공 모두가 융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선원의 공 개념을 우리 회원들 자체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확립해 놓아야
포항공대 교수의 경우처럼 우리 선원의 공을 공격적으로 곡해하는 데에 대응하여 즉각적으로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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